2023-02-22

다시 하는 기록

개인 블로그를 열심히 했던 때가 있었다.
약 10년 전 쯤?
어떤 일을 계기로 기존에 맺었던 상당한 많은 사람들과의 관계를 끊었던 적이 있는데
그때는 나의 일상과 관련된 모든 일들이 노출되는 것이 싫어서
열심히 운영했던 블로그도 멈추게 되었다.

​세월이 지나 나도 단단해 지기도 했고,
어느 순간 지나가는 시간들을 기록해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가까운 친구들과는 비공개 sns로 일상을 공유하긴 했지만
플랫폼 특성상 나의 이야기가 기록된다는 느낌을 받기 힘들었으니까.
이런 생각을 한지는 꽤 오래되었는데, 우연히 친구가 살뜰하게(?) 운영 중인 블로그를 보고 결심을 하게되었다.
결심을 한 지 꽤 지난 지금 드디어 실행에 옮겨본다.

아무튼.
다시 기록을 할거라는 이야기이다.
그동안은 일과 관련한 공지사항 정도만 공유하는 차원에서 블로그를 운영했다면,
앞으로는 더 자주, 사적으로. 🙂

요즘에는 함께 하는 일들을 몇가지 만들었다.
그래서 작업실 바깥에서 사람을 만나는 일이 전보다 늘었다.

​그 중 하나가 홍학순 작가님과의 작업이다.
어느날 온라인 사이트에 타이벡 파우치에 자수로 이름을 써줄 수 있는지 문의 글이 올라왔다.
자수 커스텀서비스에 대한 문의는 종종 있지만,
여러모로 아직은 진행하기 힘들어서 죄송한 마음 가득 안고 거절을 하고 있다.
특히 타이벡 원단에 자수는 아직 시도해본 적이 없어서 실험과정도 거쳐야 했기에 할 수 없었다.

​거절은 했지만 (거절을 했기때문에 더욱) 그 문의 글이 마음에 걸렸다.
어떻게 방법이 없을까 생각하다가 문득 종이와 비슷한 타이벡의 특성을 떠올렸고,
그렇다면 물에 지워지지 않는 펜으로 이름을 적거나 드로잉을 해서
내것 이라는 표시를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찾아보니 몇몇 아티스트 들은 이미 타이벡을 소제로 작업을 하기도 했다.​

커스텀 제작을 원하는 고객들에게 이 방법을 제안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이왕이면 내가 쓴 한글 보다는 알록달록 귀여운 드로잉이 더 좋을것 같았다.
그리하여 윙크토끼의 아버지 홍학순 작가님을 찾아가게 된 것이다.​

마지막 직장 생활을 할때 내가 맡아 진행했던 프로젝트에 선생님을 초대한 적이 있다.
그때 작업실을 방문하게 되었는데, 수많은 동그라미가 그려진 수 많은 노트를 보았다.
몇년에 걸쳐 기록한 그것들은 처음에는 동그라미로 시작하여
윙크토끼가 되고, 그의 친구들이 되고, 토끼 언어가 되었다고 했다.​

지돌이, 사슴 등 아직도 확장 중인 윙크토끼의 세계가 파우치에 담기면 좋겠다,
아름답겠다 생각했다.
선생님은 선뜻 제안을 수락해 주셨고, 두번째 만남에서 파우치에 그림을 그려주셨다.
파우치는 일단 다섯개만 제작해서 월요일에 오픈할 예정이다.

사슴, 나비, 윙크토끼, 지돌이가 등장하는 그림은 파우치를 펼치면 보이는 안쪽에 있어서
파우치를 열면 마치 그림책의 한 장면을 보게되는 것 같은 느낌이다.

월요일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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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삐뚤빼뚤한 바늘땀과 허술하게 달린 라벨이 특징인 보자기는
아직 직장에 다닐때 꼼지락 꼼지락 처음 만들어서 팔았던 손잡이 달린 보자기.
지금 보니 이런 퀄리티의 물건을 사줬던 친구들 참 착하고, 고맙고 대단하다.
나에게 꿈과 용기를 주었던 친구들 진짜 진심으로 고맙다.
평소에도 고마웠는데, 이 보자기를 보고 한층 더 고마움을 느끼게 되었다.

​홍작가님이 이번 미팅때 타로를 잠깐 봐주셨는데, 이 보자기를 타로카드 깔개로 쓰고 계셨다.
언제 구매하신건지는 모르겠으나 매우 반가웠고,
동시에 성장기 이전의 자아를 만난것 같아 너무 창피했다.
중간에 천이 긁혀 튿어진 부분이 있어 수선하기 위해 작업실로 가져왔다.

이날 미팅에서는 아이패드로 애니메이션 만드는 방법을 속성으로 배우기도 했는데,
집에 와서 처음 만들어본 것.
우물쭈물한 표정의 고양이.

홍작가님이 라벨 부분을 주머니처럼 달았으면 좋겠다고 제안해 주셨다.
재단하고, 라벨과 단추를 달아 밑작업 해둔 타이벡 원단에 그림을 그려주시면
내가 마무리 재봉작업을 하기로.
사진은 라벨 주머니 속에 들어간 윙크토끼.

2020. 8. 14 작성.